신이시여, 잘지냈는가? 나는 이교도가 되었다네!
미친것들, 썩어빠진것들, 존X꼬운것들. 그건 모두 균열과 함께 사도의 힘으로 없애버릴걸세.
세월 속에서
그의 생애는 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LS.4425에 태어나 자라고, 병사가 되고, 가정을 꾸리고, 기사가 되고, 50세에 결속을 증명하고, 평안 무탈한 삶을 지내는듯 하였다.
그러나 102세에 돌연 불신자임을 자백하며 변방 끄트머리나 다름없는 서남부 협곡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신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 따위의 말을 둘러대며 백여 년을 있은 후, 215세에 사표를 내고 알프를 떠났다.
행간에는 근방 부대의 횡포로 물자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산적행위를 했다던가, 마찰을 빚었다던가, 불신자 무리를 숨겨주고 있다던가 하는 뜬소문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알수없을것이다.
그래도 그 슈니크 경, 불신자지만 좋은 사람이었지 않나요?
좋긴 했는데, 그래. 좋긴 했는데…
소문의 그 무뢰배가 슈니크 경일거라니, 말도 안 돼.
뜬 소문은 중요하지 않다
헐렁하고 유쾌하며 동시에 백여 년 밖에 살지 않은 사람치고는 너무 지치고 무기력한 사람.
신께 사랑만 받았더라면, 하는 가정이 아쉬운 사람이었으나 전역한 이후로 들리는 목격담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알프 남부에서 결속을 위해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근방에서 목격되거나, 길 잃은 이를 길 까진 데려다 주었다 까지는 선량한 사람이군 싶을것이다. 그런 뒤에 보호비를 빙자한 자금탈취만 없었다면 말이다.(삥뜯긴 이는 평소 열성적으로 불신자를 비판하던 신실한 이라는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것이다.)
그외에도 몇몇 병사를 내기로 싸그리 털어먹은 건이며 자원 무단채취 등 곧게 산 기사란것이 믿기지 않는 소문이 가득 돌았다. 이후 알프에선 발견 즉시 추방처리하도록 각 부대에 경계령이 하달되었다.
충동구매를 잘 하는 전직 기사란 행정물류에도 빠삭하며 방산의 허점도 잘 파악했다. 즉 알프 군을 여기저기 쏙쏙 털어먹었단 소리다. 어리버리한 초병 사이에선 눈이 많이 오는 날 들이닥쳐 불시점검을 하는 선임 병사는 사도라는 괴담마저 퍼질 지경이었고, 좋은것인지 나쁜것인지 병사들의 기강이 좋아지는 효과를 만들었다.
전장에서 흘리기 쉬운 소모품-이를테면 화살, 단검, 각종 잡다한 것-은 몰래몰래 훔쳐와 사용했으며 신입이 들어와 어수선할 때를 노려 잠입하는것도 수없이 많이 벌어졌다. 그가 대체 무엇을 목적으로 위험천만하게 설원을 배회하고 창고를 털어가는지는 글쎄, 불신자의 입장을 알 필요가 있을까?
활동함에 있어
원래도 헐렁할 때엔 깡패같은 자세를 풍겼으니 어찌보면 적성을 잘 살린것이다. 불신자를 핍박하는 무리를 습격하고, 털고, 약탈하고, 빙빙 돌리고, 각종방법으로 큰 엿을 주는 사이 기존에 있던 중도파와 불신자를 놓지 못한 가족들, 그들을 염려하나 드러내지 못한 이들속에서도 조금씩 힘을 보태는 이들이 있었다.
모르는척 뒤로 건네지는 지원으로 그는 점차 리프난시르의 정의로운 의적 따위가 되었다. 온건한듯 과격한 솜씨로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진 않았으며(대신 목숨 귀한만큼 살려는 드리고 감사비를 받았다.) 합법적인 경로로(위장취업/분실물 습득 등) 물자를 구해 사회적 약자에 속한 이들을 불신자와 아닌 자 가리지 않고 도왔다.
사회 인프라와 멀리 떨어져 숨어 지내는 불신자들과도 지내며 기술, 지식, 무력 등을 가르치고 삶의 터전에서 쫒겨나고 배척당한 이들을 구해오곤 했다. 그리 구해내거나 찾아간 이들 중에서도 제자를 받고 아이들을 돌보며 완전한 휴식을 주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였다.
활동할수록 신이 불신자를 사랑하지 않은 이유를 하나씩 적립해주었으나,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우리가 사랑할것이다. 서로의 사랑으로 보듬고 지탱하여 살아갈것이다.
비록 영은 신 곁에 가지 못한다 하여도 사는 내내 사랑할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생에 모든것은 쓰임새가 있다고, 열심히 나돌아다니고 갈고닦은 기술은 언젠가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잡지와 신문의 광고부터 입소문 속 이야기, 물건 정리법의 관찰, 사람의 습관, 다양한 직군의 이야기, 거기에 흥미로워서 들여다본 각종 마법과 도구들. 그의 경험은 빛을 발한다.
병사, 위병, 경비, 용병, 농부, 일꾼, 선생, 사냥꾼, 상인, 직원, 작가, 청소부, 공예가, 조달자, 구출자, 테러리스트…
위장취업 전문가, 싸움의 귀재, 다재다능한 해결사, 추방된 기사. 그를 수식할 단어는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수없이 많은 분장과 변장, 타인의 명의를 빌리고 이름을 숨기는 와중에도 질서를, 도덕과 예의를 지키는 것 만큼은 기를 쓰고 지켰다. 규율을 놓아버린 무력은 무엇이 되는가? 힘은 갈고 닦아 제어되지 않으면 야만이 된다. 수없이 많은 폭력을 거리낌없이 저질러온 세월에 비하면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 나름대로 마지막 선은 지키고 있었다.
물론 선을 지키는건 사람에 한정한 상태며 마수를 상대할때엔 손속에 자비가 없다. 삐딱선을 좀 타서 사람 잡는 실력도 좋아졌지만, 옛날 옛적 노장으로 불리던 시기만큼 마수 잡이 실력은 유지하여 발전했다.
사람을 돕다 여유가 나거나 마수가 나왔단 소리가 있음 토벌하러 다닌다.
기다리노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동료 사도들을 기다리는것도 정도가 있지, 사람인지라 기억력이 흐릿해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매우 주의하여 만든 개인 기록도 계속 보다 보니 자신의 상상인가 싶을때도 많아진데다, 기다림에 지쳐 사도들이 언제 돌아오건 알아볼법한 것을 만들기로 했다. 그들이 보고 찾아오면 제일 좋고, 아니더라도 자신의 기억을 도울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독을 타기로 결정했다.
어느날 라르케아의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30부 동화 시리즈 ‘여행을 떠난 에리. 그리고,’ 는 다양한 등장인물과 여행하는 이야기를 섬세한 일러스로 담아 여느 도서관이면 아동 서가에 꽂혀있게 되었다. 작가 슈니비아 페트리엇은 한샤의 사랑을 받은 이로, 자신의 여행기를 곧 함께 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출간하게 되었다며 도서 출판 기금의 일부를 저소득자 및 각종 사회적 약자에게 기부하여………
…
몇몇 권에서의 신적 존재에 대한 의구심 묘사로 인해 작가의 사상에 대한 의심, 그리고 좋아하던 작가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궁금했던 사생팬의 스토킹으로 작가는 허구의 인물이며 진짜 작가는 불신자임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동화를 보며 자라난 신실한 아이-어른들은 불신자를 미화한 이야기라 분노하여 책을 버리기도 하였으나, 동화의 장소가 실제 장소를 바탕으로 했고 출간 백여년 후인 최근 벌어지는 자연재해와 마지막권의 이야기가 비슷함을 알아차려 다시금 물밑으로 책이 돌고 있었다.
한참 책을 좋아하던 이들은 다시금 떠올려볼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권의 검은 괴물과 마주한 동물친구들은 실존하는 인물인가?
세계를 떠돌며 사도들을 찾아다녔다.
그의 동료, 그의 목표, 그의 희망. 시간이 갈수록 비틀리고 과도한 기대를 쌓아간듯하나 회귀한 이를 하나 둘 씩 마주할수록 그들이 알던 여유로운 모습을 조금씩 되찾는것 같았다.
아직 기억을 찾지 못한 이는 멀리서만 지켜보거나 무언가를 설득하였으며, 돌아온 이들과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활동을 같이 하길 권하였다.
신앙과 마법 너머
여전히 신을 믿는 듯 하나 ‘이곳의’ 신은 아닌듯하다.
즉 그는 이교도가 되었다!
신전과 신, 사람들의 신앙을 배려하는듯 하나 무언가 수틀리기라도 하면 비꼬기 일쑤이며 그닥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인다. 어쩌겠는가? 암만 좋던 사람도 거진 평생을 불신자로서 살아오면 비틀린 사고를 갖게 된다.
사람은 편애할수있다. 그럴수도 있다, 사람인데.
신이 편애를 한다. 네? 신이요? 근데 그게 상식이란다. 말이 되냐?
조건없고 공평한 사랑이 상식이던 삶에서 화끈냉담한 편파를 마주하니 아주 정신이 혼미했다. 그의 섬세하고 올곧은 정신은 그만 손상을 입었으며 이러한 것을 비정상적인 사회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나름대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지원하고 잘못된 부분에서 필요한 것을 뜯어 그것이 가야 할 곳으로 배달하게 되었다.
평범한 불신자 위장도 해야 했기에, 안그래도 유용할한 수준의 마법은 숙련된 솜씨가 되었다. 일상에서 쓰이는 생활마법부터 마탑에서 10년 가량 구르면 배울법한 마법까지, 많이 익힌만큼 여러 사람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사도
취급이 재미있더군?
불신자임에도 신성을 쓰는 자. 양쪽 중 어느 한곳이라도 온전히 받아들여지긴 어려운 성질이다. 본인 또한 그 점을 인지하기에 불신자들과 있을때엔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워낙 눈엔 띄는편인지라 아주 멀리에서도 사도 효시가 여기 있다고 광고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필요할때엔 가능한 한 화려히 피어올린다.
남들이 목격한 가장 심했던 수준은 인지감소 약 50%. 작은 불티가 흩날리고 고열을 겪으면서도, 짙은 그림자에 삼켜져가면서도 눈은 시뻘겋게 뜨고있었다.
이 세계는 썩어빠졌다. 불신자와 언데드가 왜 나온줄 아나? 신이 편애했기 때문이다. 숙제를 내주었더니 열 문제 중 다섯 문제를 풀면 숙제를 한 것이냐? 신은 의무를 버렸다.
정도가 뭐고 사도가 뭐냐. 원리원칙이 정해진 세상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것이 질서냐?
전력을 다해 사도의 길을 걷겠다.
생의 여백은 ___ 으로 채운다
활쏘기, 사냥하기, 목적 외 난데없는 충동구매(그러나 규모가 소박해짐), 제자 갈구기, 가르치기, 각종 면에서 성취감 느끼기, 마수 토벌, 사도 찾고 만나기, 지인(이었을) 만나기, 싸움 말리기, 낮잠, 사소한 것에서 행복 찾기, 초기 언데드 유지보수, 추억 되짚기, 재산 재분배 목록 만들고 실천하기
사도, 미치광이, 불신자, 이교도, 언데드의 기사.
그것이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