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
한샤의 사랑을 받은 어머니는 특수광물을 다루는 연구자, 그리고 광물을 이용한 무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특출난 대장장이였으나 마탑의 삶이 알맞지 않아 알프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리고 모시 하르벤은 6살 때 입양을 통해 그 사람과 한 가족이 됐다.
모든 면에선 엄격하고 무뚝뚝하지만 나름 다정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뛰어난 대장장이로서 죽음의 경계 근처에 배치된 요충지에서 약 100년을 일했으며, 마탑에서 지내던 시기엔 연구자로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았다. 허나 10년 전 예상한 것보다 더 빨리 수명을 다하고 신 한샤의 품에 돌아가, 라르케아의 땅에서 풍습에 따라 장례를 치러줬다.
— 전조증세 —
왼손 손가락 끝에 생겨난 반점을 어머니가 발견할 때부터 조금씩 전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모시가 사도임을 확신할 수 있던 건, 어머니가 발견하기 전 부서진 장난감을 제 손으로 고쳐보겠다며 본능처럼 장난감 망치를 휘둘러 신성을 사용하는 걸 어머니가 목격하였을 때였다. 그 어머니에 그 자식이라고, 하나뿐인 자식이 저와 같이 장인의 재능이 있음에 기쁨을 느낀 것도 잠시, 그 하나뿐인 자식이 신의 대리인임을 알자 걱정부터 들었다더라. 만약에, 라는 말만 없었더라면 필요가 없는 걱정까지 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평범한 인간으로서 무수한 무기를 만들어낼 힘을 지닌다면, 그 힘에 취해 어찌 변질할지 누가 알랴. 대신에게 받은 특별한 축복을 오직 제 이득만을 위해 함부로 남용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마치 제 자리를 이을 후계를 가르치듯 모시 하르벤에게 제가 아는 모든 걸 엄격하게 가르친 것 같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어려웠으나 그럼에도 모시는 어머니와 보내는 그 모든 시간에 기쁨을 느꼈다. 신성을 사용하여 뭔가를 만들어낼 때마다 어머니에게 받는 칭찬이 좋았고, 그가 원하던 대로 존경하는 어머니와 드디어 닮은 점이 생긴 것 같아 그저 행복했었다.
— 결속 —
사랑을 건넨 신 아르콥스가 아닌, 신 한샤를 유일신으로 믿기 시작한 것도 추측한 대로 모두 어머니의 영향이라 할 수 있겠다. 그저 어머니를 따라 신 아르콥스가 아닌 신 한샤에게 기도를 드렸고, 어머니의 생활 습관에 자연스럽게 신 한샤의 신봉자가 됐다. 분명 신 아르콥스와 운명적인 끌림을 느꼈을 터인데, 그 당시엔 만나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존재와의 이끌림보다는 어머니와 공통점이 생기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장례를 마친 뒤, 19살 때 결속을 위해 신의 성역에 걸음을 옮겼다. 삶의 나침반이 되어준 어머니를 대신할 존재가 필요했다는 불순한 이유만으로 성역에 들어섰으나, 그럼에도 신 한샤는 그런 이기적인 믿음마저 받아줬다. 신 한샤와 결속을 이뤄냈을 때의 감정을 지금 떠올리면, 마치 6살 때 어머니와 만났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 대장장이 —
그 뒤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걷고자 라르케아의 아카데미에서 특수광물에 관련된 연구를 배우기 위한 유학 생활을 5년 동안 보낸 뒤, 어머니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알프로 돌아온다.
“대신에게 받은 축복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을 도울 것.”
죽기 전 남긴 유언을 나침반으로 삼아 저와 같은 이들의 믿음마저 감사하게 받아준 신을 위해서, 그자는 자연스럽게 존경하던 어머니와 같은 이가 되고자 하였다. 그자의 어머니가 그러한 것처럼 5년 전 병사로 입대해, 죽음의 경계 근처에 배치된 요충지에서 병기 제조사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하던가. 실력만 제 어미를 닮았으면 좋았을 터인데, 완벽주의자적인 성격마저 역시 빼닮아 당시 같이 일하던 동포들 모두 혀를 내둘렀다 한다. 너 혼자만 병기 제조사고, 대장장이인 줄 알아? 모시 나름으로 조언을 건넨다며 툭 던진 싹수가 노란 언행에 기분이 상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장인들의 항의에 시달리던 기사는 모시에게 사도의 표식만 없었더라면, 퇴직서를 건네며 간절하게 떠나라고 부탁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믿음에는 힘이 담겨 있다. 정체성의 바탕이 되며 그 믿음이 꾸준히 증명된다면 부정에 따른 공백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저러한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눈에는 주신에게 받은 축복이 담긴 도구를 만들어내는 대장장이의 모습이 어찌 보였으랴. “신의 대리인이 만들어낸 무기를 쥐고 있고, 축복이 담긴 갑옷을 착용하고 있다.” 그 믿음 하나만으로 언제나 지속되는 마수의 범람 속에 불안을 안고 살아가던, 죽음의 경계 근처 격전지의 병사들이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리라.
그렇기에 모시는 그 믿음에 책임을 느꼈다. 실패한 물건은 곧 주신의 믿음만을 믿고 제가 만들어낸 무기를 들고 갑옷을 입은 제 동포들은 물론이요, 이러한 신성을 내려준 주신과 주신의 축복 외로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과 결속을 이뤄준 신 한샤의 믿음을 배신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모시 하르벤은 동포는 물론, 대신과 신 한샤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시는 완벽한 무기와 병기를 만들기 위해 수면을 아껴가며 밤낮 가릴 것 없이 망치를 두들기기 시작하였고, 반점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팔꿈치까지 특수광물로 변질한 왼손은 매일같이 빛이 사그라들 일이 없었다. 그렇게 현재, 신의 무기를 만들어내는 사도요 유일한 대장장이가 된다.
허나 모시 하르벤은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결국 그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도로서의 책임보다는 어머니와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최대한 많은 이들을 돕는 것이다. 그자는 진심으로 그것만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제 육체가 특수광물에 삼켜져 사라진다고 해도 말이다.
— 여담 —
1. 호불호
— 좋아하는 것
달콤한 간식 : 특히 가장 추운 겨울날 마시는 뜨거운 초콜릿 음료를 유독 좋아하여 여유가 있을 때마다 만들어 마신다. 시간이 없으면 허브차를 대신 한다.
아름다운 것 : 반짝거리는 광석은 물론, 손바닥만 한 작은 나비가 날갯짓을 하는 모습에도 쉽게 감탄을 느낀다.
칭찬 : 그런데 일반적으로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
— 싫어하는 것
시끄러운 것 : 사람의 북적거림은 오히려 두통을 갖고 온다.
눈 : 일 년의 반 이상 지속되는 겨울에 내리는 눈은 그저 예쁜 쓰레기일 뿐이다.
기대감 : 간혹 사도에게 향하는 기대는 심하게 부담스럽다.
2. 취미와 특기
날이 좋은 날에 햇빛과 살랑거리는 바람을 특히 즐긴다.
특기는 28시간 이상 자지 않은 채 작업하기. 취미는 12시간 이상 독서 하기.
아직 젊기에 가능한 기행이겠다만, 특히 이변이 일어나며 언제나 병기를 필요한 상황이 지속되었기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특기가 아닐까 싶다. 물론 급박한 상황에만 실행하기에, 평소엔 수면 시간은 꼬박꼬박 잘 챙기는 편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3. 나침반
어머니가 사용하던 망치. 최소 100년은 사용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4. 여담
— 양손잡이
— 친부모가 어찌 생겼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떠한 신의 사랑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잘 살다 죽었겠거니 하고 있다.
— 다른 신의 사랑을 받아 장수의 삶을 사는 그릇들이 저보다 나이가 10배가 많든 100배나 많든, 그들은 대하는 태도엔 변함이 없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정중하게 대하는 편이나, 나이가 저보다 많고 육체의 노화가 저보다 느리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어리게 보면 굉장히, 아주 심하게 불쾌함을 느낀다. 노화가 시작했거나 저보다 작위가 높지 않은 이상, 보통은 반존댓말을 거침없이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