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리시르 4982년 3월 25일, 초봄의 어느 평범한 날.
잔잔한 파도를 가르며 순항하던 상선 ‘페르마타호’ 위, 선장 에이비스 블랙과 그의 아내 에밀리 S. 블랙 사이에서 헬리오스 블랙이 태어나다. 아이의 머리카락은 에밀리 S. 블랙을 닮아 붉은색이었다.
<출신지 및 과거>
남부 헤몬, 그중에서도 대륙 가장 남쪽의 항구 도시 ‘리하티 Rihathie’ 출신. 다양한 선박들이 오가는 헤몬의 여러 항구 도시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태어난 곳은 엄연히 따지자면 리하티와 코르누코피아 해협 사이의 바다 위이지만, 그의 부모는 물론이며 헬리오스 본인 역시 평생의 삶을 리하티에서 살아온 토박이이다.
헤몬에서 뱃일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랄파다를 믿으며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지만, 리하티의 뱃사람에게는 랄파다에게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한 다양한 미신이 존재한다. 몇 가지를 대표적인 것들 몇 가지를 나열해 보자면 배에 오를 때에는 오른발부터 탄다든가, 항구를 떠날 때에는 바다에 코르 한 닢을 던진다든가, 고양이는 행운을 불러온다든가···. 특히나 리하티의 경우 그 규율(이라 쓰고, 헬리오스는 미신이라고 말한다.)이 두드러지는 도시이기에, 어린 붉은 머리 토박이는 그 많은 미신들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다.
더불어 리하티의 뱃사람들은 이 어린 붉은 머리 토박이를 ‘페르마타호의 살아있는 행운’ 혹은 ‘뱃사람들의 걸어 다니는 불행’이라고도 칭했는데, 이는 위에서 서술한 것과 이어지는 시답잖은 이유가 뒤따른다. 그저 ‘붉은 머리는 배에 불행을 불러온다’라는 것과 ‘배에서 태어난 아이는 행운을 불러온다’라는 믿음 탓에.
그 탓에 헬리오스는 아주 어릴 적부터 머리카락을 염색해 왔다. 머릿결이 쿠퍼 삼촌의 마구간 지푸라기와 다를 바 없어짐에도 불구하고!
<페르마타호>
그렇다면 도대체 이 페르마타호가 무슨 배인가? 이 선박에 대해 설명하려면 우선 ‘현 선장 에이비스 블랙’에 대해 짤막하게나마 소개해야겠다. 항구 도시 리하티를 주둔지로 둔 다양한 목적의 선박들 중 가히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 상선 페르마타호의 현 선장이자, 페르마타 상단의 상단주.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성격 덕에 사업 수완이 제법 좋았으며, 그 어떤 미신도 ‘그저 미신일 뿐’이라며 일축하여 자신만의 신념을 고집하던 이. 도합 열이 넘는 형제들 중 넷째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제 아버지 페르마타 블랙에게서 상단주 자리를 넘겨받은 사람. 너무나도 오만하고 거만해지기 쉬웠음에도 언제나 검소하고 겸손했던 사람. 그렇기에 선원들을 포함하여 리하티의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다녔던 유능한 인재였으나, 이제는 하루 빨리 제 자식에게 상단을 물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머리가 벗겨져버린 뱃사람 중 한 명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페르마타호가 ‘페르마타 블랙’ 소유의 배였다는 것과, 그의 성씨를 보아 헬리오스의 친조부라는 것 정도는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결속>
집안 사람 대부분이 랄파다의 사랑을 받고 그와 결속한 반면, 17세 무렵 헬리오스 그가 돌연 아르콥스와 결속하여 돌아와 한바탕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결속을 하고 온 뒤 근 5년 정도는 잘 숨기고 다녔던 것 같다. 외형적인 변화가 없었으니까!
어째서 그렇게 되었느냐고 한다면… 글쎄? 단순히 어릴 적 선원 삼촌들을 도와 닻을 끌어 올리는 일이 너무너무 힘들고 고되었기 때문일까? ‘아, 아르콥스 님의 사랑을 받았더라면 이런 무거운 닻 정도는 나 혼자서 가뿐히 들어 올릴 수 있었을텐데!’ 같은 생각을 한 탓일까? 무엇보다도 헬리오스는 랄파다의 은총이 가득한 바다보다도, 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좋았다.
그렇다고 그에게서 낌새가 없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본디 랄파다의 사랑을 받았다 하면 물, 바다, 대해와 관련된 마법을 사용할 때 좀, 잘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잘 할 줄 아는 분야에 흥미를 갖기 마련이건만, 헬리오스는 어린 시절부터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저거 나중에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 싶은 시선이 언제나 뒤따랐다. 그럴 때마다 헬리오스는 이렇게 반박했다.
“아니, 뱃사람이 바람 불어오는 거에 관심 보이는 게 그렇게 이상해?! 항해하려면 당연하잖아!”
결과적으로는 헬리오스는 더 이상 그 무거운 닻을 선원 삼촌들과 낑낑대며 끌어올릴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현재>
자, 여태 그가 자라온 배경에 대해 알아보았다면 이제는 지금의 헬리오스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겠다. 크게 꼽자면
하나, 페르마타호. 그리고 페르마타 상단의 차기 주인이다.
둘, 어째서인지 그 모든 것을 고사하고 한량마냥 집 밖으로 나돌아다니며 놀음판에 끼는 것이 일상이다.
셋, 랄파다의 사랑을 받아 본래 지니고 있었던 신성은 어째서인지 사용하지를 않는다.
넷, 이 모든 것은 그가 사도임이 밝혀진 뒤부터 쭉 이어져 오고 있다.
<그 외>
a. 취미는 나무 타기, 길고양이 놀아주기, 공차기.
b. 비 오는 날 싫고, 해 쨍한 날 좋다.
c. 체격뿐만 아니라 체력과 근력이 좋다. 어릴 적부터 선원 삼촌들의 심부름과 닻 올리는 일을 돕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됐다. 힘을 써야 하는 일이 있으면 고향 사람들은 반드시 헬리오스부터 찾고 봤다. 뭐랄까,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을 덜 해도 된다의 표본 같은 사람.
d. 활동량이 많은 만큼 식사량도 제법 많다. 남들 1인분 먹을 때 혼자 8인분 먹는 사람.
e. 고향에서 자라는 오렌지를 무척이나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