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숲의 짐승】

그 당시 알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더라도 소식에 밝은 사람이라면 ‘겨울숲의 짐승’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보았을지도 모른다. 순록 무리에게 주워져 늑대의 젖을 먹고 곰의 비호를 받으며 토끼와 산새들을 부리는 부정한 존재. 사실 처음 발견되었을 무렵에는 오롯이 인간의 모습이었기에  ‘짐승’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폐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틀림없는 인간을 가리켜 그렇게 불렀던 까닭은 그를 둘러싼 환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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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숲은 알프의 북부에 위치한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설산(雪山)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아르콥스의 날개짓이라 불리는 눈보라로 인해 시야 확보가 어렵고, 죽음이 도래한 불신자들이 모두 산에 버려지면서 당시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된 곳이었다. 그런데 그런 혹독한 환경에서 이지라고는 없는 짐승과 언데드와 함께 걷지도 못하는 아기 때부터 살아왔다니, 상식을 벗어난 존재의 등장에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다. 후에 누군가 이는 같은 짐승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며, 인간의 범주가 아닌 부정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겨울숲의 짐승’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이 그대로 기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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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의 명령】

사람들이 떠드는 대로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그는 어딘가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로 인해 매일 밤 불안에 떠는 영민들을 안타깝게 여긴 영주는 그를 숲에 가두기로 했고, 직접 인부를 고용하여 산과 민가 사이의 경계에 커다란 방책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방책이 완공된 후에는 실력 좋은 음유시인을 구하여 긴 생을 살아가는 동안 결코 민가에 숨어들 수 없도록 겨울숲의 짐승을 조심하라는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영주의 책략 아래 겨울숲의 환경은 점차 척박해져 갔다. 아니, 거의 그래보였다. 어느날, 그가 돌연 과거이자 미래의 사건을 기억해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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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수 없는 이웃】

영주는 숲에 남겨진 고아였던 그를 거두지 않고 대신 겨울숲의 부정이라 낙인해 영원히 인간사회에서 격리되도록 조치를 취했다. 마을사람들은 이러한 결정에도 여전히 부정한 것이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꺼림칙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수가 되어버린 언데드도 아니고 마수는 더더욱 아닌 죄없는 사람을 토벌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기사를 파견해 그의 생사를 은밀히 확인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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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돈에 눈이 먼 이들은 이웃의 불안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법. 심마니들은 곧잘 개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삼을 캐오고는 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짐승’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무엇보다 그곳에서만 자생하는 약초의 값어치가 꽤나 쏠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대놓고 열려있는 나무열매는 따먹지 않았는데,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열매에 손을 댈 때마다 순록에게 들이박히는 고통을 모두가 경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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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 기억을 되찾게된지는 약 70년 정도 되었다. 이전 시간으로는 영주의 저택을 나가 겨울 숲의 산지기가 되었을 무렵이고, 이번 시간으로는 겨울숲의 방책이 완공된 날이었다.

• 기억은 되찾은 이후로 그는 종종 새로 변해 숲 밖으로 나가 이런 저런 소식을 엿듣고 왔다. 자신만 이런 기이한 경험을 한 것인지, 아니면 사실 그 모든 것이 꿈이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기어나온 그 재앙을 우리는 결코 되풀이되지 못하게 막아야 하기에.

• 사도가 모인 곳에서 그는 언뜻 보기에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그는 순진했고 다정하여 타인에게 물렀다. 하지만 시간과 사건이 되감긴 이후 겨울숲 근처의 이웃들은 더이상 가까운 존재가 아니었고, 때문에 기억을 되찾기 이전의 그는 인간을 몹시도 두려워했다. 이로 인해 그는 친근한 사람들 틈에서조차 이따금씩 요란스레 굴고는 했다. 인기척에 기민하게 반응하거나, 그림자가 보이면 반사적으로 몸을 숨기거나, 잠에 깊게 들지 못하고 아군의 허리춤에 달린 날붙이를 무서워했다. 정말로 꼭 숲 속의 짐승이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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